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26위 성인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일본 26위 성인을 다룬 흑백 영화 <순교혈사 일본 26위 성인>이 [[1931년]] 제작되었다. [[https://youtu.be/ZjpL8w5JeaI|영화 보기]] * [[센고쿠 시대]]의 다이묘 [[테라자와 히로타카]]는 이들의 순교로 가톨릭 신앙을 버렸고, 이후 자신의 영지에서 가톨릭을 매우 박해하였다. 결국 그의 영지에서 [[시마바라의 난]]이라는 대규모 종교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. * 2016년 [[NHK 대하드라마 시리즈|NHK 대하드라마]] [[사나다마루(드라마)|사나다마루]] 30화에 등장한다. 후시미성 공사에 목공 조장으로 참가하는 프란시스코 키치조에게 [[고니시 유키나가]]의 어머니 막달레나 와쿠사의 부탁으로 주인공 중 한명인 키리가 찾아가서 십자가상을 받아서 [[가라샤|호소카와 가라샤]]에게 전달한다. 이후 토사[* [[시코쿠]] 남부]에 스페인의 배 산 페리페가 표류해왔는데, 실려있는 화물의 가치가 70만석[* 당시 히데요시의 직할령이 222만석이고 다이묘중 제일 세력이 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250만석이었으니 엄청난 가치다.]이라는 소리를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전의 진도 8급 대지진으로 인해 소모된 지출을 만회한답시고 그 화물을 뺏으려 하는데, 몇년전 내린 배의 화물을 함부로 뺏지 말라는 명령과 충돌하지 않는답시고 신부 추방령을 꺼내들어서 신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한다. '''귀와 코를 자르고 조리돌림 후 [[책형]]에 처하라는 잔인한 명령.''' 프란시스코는 "왜 자신은 잡혀가지 않았을까요"라고 고민하면서, 가면 안된다는 가라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잡혀간 사람들에게 스스로 찾아간다. 이후 "6명의 선교사와 20명의 일본인 신자는 이후 나가사키에서 책형에 처해였다. 그 가운데에는 프란시스코 키치라는 장인도 섞여있었다"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웃고있는 히데요시의 얼굴이 나온다. 이 사건은 도요토미 정권 안팎으로 부정적인 평가[* 히데요시를 오랫동안 섬긴 [[오오타니 요시츠구]]는 사위 [[사나다 노부시게]]에게 "화물에 욕심이 난다고 죄없는 사람들을 책형에 처할줄이야, [[도요토미 히데요시|전하]]는 너무 오래 사셨는지도 모르겠다"고 말하고, 히데요시에게 [[코마키 나가쿠테 전투|맞서다가]] 굴복했지만 [[세키가하라 전투|이후 역사에 아는]]대로 [[오사카 전투|도요토미를 멸]]한 [[도쿠가와 이에야스]]는 [[혼다 마사노부]]에게 "[[도요토미 히데요시|태합 전하]]의 처사는 상식을 벗어났다.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태합님은 망령나신 지도 모르겠다"라고 말한다.]를 받으며, 말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일화로 나온다. [[분류:가톨릭 성인]] [[분류:가톨릭 순교자]][[분류:일본 기독교의 역사]][[분류:십자가형된 인물]][[분류:날붙이에 죽은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